산책 나왔다가 간만에 커피 생각 나서 들렀습니다.

여긴 언제 와도 참 맛있어요. 


오늘은 케냐 AA 가 잘 되었다고 추천해주셔서 마셨습니다. 

머금고 있으면 향이 진하게 올라와서 참 좋네요 ㅋㅋ 




소양강 처녀 건너편에 바로 있습니다.


수업 때 서평 과제가 있었는데 교수님이 제시해 준 도서들 중 하나. 

사실 멕시코에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멕시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과제를 위한 책이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의미있게 다가왔다. 서평을 목적으로 읽은 책이라 그런지 더 깊게 읽었다. 

서평 전체를 올리기엔 무리가 있고 일부만 남겨보겠다. 


저자 김세건

『우리는 빠창게로』는 멕시코 축제와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적 환경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멕시코 농촌에서는 어떤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멕시코 농민들에게 축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아가 멕시코에 많은 축제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유지하는 힘은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들려준다. 

<출처 - 네이버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59843>



1) 멕시코, 나에게는 생소한 나라

 

 빠창게로,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이다. 빠창게로는 멕시코에서 쓰는 말로 축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자신을 조금 비하해서 말하는 단어이다. 다시 말하면 축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사전에는 <1. 떠들썩한 2. 축제에 참가하길 좋아하는> 이라 명시하고 있다. 이렇듯 멕시코인들은 스스로를 축제를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자칭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축제와 더불어 살아간다. 그 과정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기로 하자.

 필자는 멕시코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기껏해야 밀짚모자를 쓰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한 손에는 타코를 들고 있는 모습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일까? 책의 저자는 멕시코에 대한 이미지를 서부영화에서의 악당으로 묘사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멕시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는 뜻이다. , 미국 영화의 영향인지 사막에 서 있는 모습까지는 연상이 된다. 이렇게 쓰다 보니 하나하나 생각이 난다. 무법지대, 슬럼가, 이런 배경들만 접해왔으니 멕시코에 대한 선입견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멕시코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책을 덮었을 때에는 그들이 가스띠요에 불을 붙이며 옥수수에서 나온 음식을 나눠먹고, 함께 음악과 춤을 즐기는 이미지가 남았다. 이런 이미지 변화만 보더라도 충분히 성공적인 책이 아닐까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와 같은 선입견을 가졌더라면, [우리는 빠창게로!]를 읽고 선입견을 벗어던지길 바란다. 멕시코의 발전과 현재 문화적인 모습에 영향을 끼친 것을 나눠보자면 크게 <가톨릭>, <옥수수>, <농업> 이라 할 수 있다. 농업과 옥수수는 연관을 짓자면 식량으로서의 한 파트라고 볼 수 있지만 가톨릭은 왜 나온 것일까. 물론 지금의 멕시코는 82.7%의 가톨릭 신자가 있을 만큼 가톨릭 국가라고 할 수 있지만 멕시코 고유의 문화는 아니다. 이질적인 문화라는 것이다. 가톨릭이라는 요소가 어떻게 옥수수와 농업과 연관 지어질 수 있을까.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 서구적 관점의 발견인 것이지 원래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이 있었다. ) 서구 열강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그들의 것을 전파하고 강요했다. 바람직한 문화융화는 아니지만 지금의 멕시코는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만의 멕시코를 만들었다. 이런 현상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가진 기존의 문화, 즉 옥수수로 삶과 문화를 형성하고 농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삶 속에 서구적인 관점을 주입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에 그들이 벌이던 축제는 농업을 하며 한 해의 풍년을 빌고 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등 농업 중심적인 성격을 띠었다. 축제에는 축하하는 의미와 의례의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듯 농업에서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거나 비를 원하는 등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신에게 의지했다. 그런 의미로 신께 기도하며 의례, 즉 의식을 지낸다. 그리고 의례를 마친 후 모두 함께 모여 기도한대로 받으리라 믿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축제를 벌인다. 그렇기에 풍성한 음식과 떠들썩한 음악이 동반된다. 물론 춤도 빠질 수 없다. 특히 멕시코는 옥수수의 나라라고 할 만큼 옥수수와 연이 깊다. 옥수수를 신의 음식이라 여기며 옥수수의 신을 섬겼다. 옥수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풀도록 한다. 아무튼 그들만의 문화에 서구의 문화인 가톨릭이 합쳐지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예를 들면 과달루페가 있다. 이를 멕시코 문화의 혼합성이라 본다. 추후에 다시 다루도록 한다. 여기까지 농업과 옥수수, 그리고 가톨릭을 연결 지어 보았다. 정리하자면 과거 옥수수로 시작하여 농업 중점으로 발전한 국가에 가톨릭이라는 이질적인 문화가 들어와 그들과 융화하여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요소 하나하나를 살펴보자.

 ..... 





겨울이 시작되는 만큼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는걸 체감하고 있다. 

그 중 클 스타벅스 플래너 프로모션을 열고 있는데 스벅 온김에 프리퀀시를 하나하나 쌓고 있다... 

아마 기간 내에 다 모으지는 못할 것 같다 ㅋㅋ 

가장 큰 요소는 맛이 없다는 것 


그럼에도 왜 스타벅스를 가느냐 ! 한다면 벤티 하나 시키고 서너시간 죽치고 있기 좋기 떄문ㅇ ㅋㅋ 아무도 터치 안 한다. 

이번 플래너 ... 이쁘다 특히 핑크랑 네이비가 취향... 설명 보니까 용도도 나뉘어져 있는 듯하다.


이렇게 다섯 가지 색상과 타입으로 출시 됐다. 

자세한건 스벅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https://www.istarbucks.co.kr/whats_new/2018planner.do



그래도 콜드브루는 나름 맛있어서 먹는데 모처럼 신상 나왔길래 먹어봤다. 

베리 트윙클인데 정말... 맛없다. 

객관적으로 정말 맛이 없다. 다신 먹고 싶지 않아 ... 


코코아에 프림 올리고 크랜베리 잘게 올려둔 맛이다. ..



다음부터 피하는 걸로


남한산성

병자호란 배경으로 만들어진 역사영화이다. 

기존 사극 영화 패턴인 

사건 발단 - 위기 - 극복의 형태를 가지지 않는다. 과거 우리나라가 겪은 치욕을 영화로나마 통쾌함을 느끼도록 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ex) 최종병기 활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장렬한 전투씬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영웅이 나타나 위기를 극복하는 스타일도 아니기에 지루하게 느낄 염려가 있다. 하지만 고요한 흐름 속에서 영화는 메세지를 꾸준히 던진다. 그렇다고 선과 악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그 사이에서 ‘인조’(박해일)의 번민은 깊어지고,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데... 

 / 네이버 영화 줄거리 

"


둘 다 타당한 이야기이기에 관객은 끊임 없이 고민하고 고민한다. 

최명길은 말지금은 치욕일지라도 훗날을 도모하려면 일단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백성도 나라도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김상헌은 나라가 남아있더라도 치욕적인 채로 있을 수는 없다. 살아만 있는게 무슨 소용인다. 라고 말한다. 

두 인물이 모두 '죽음' 을 말하지만 서로 다른 '죽음' 이다.  인조에 몰입되어 끊임없이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현 국내 모습과, 아니 이전부터 내려오던 대한민국, 더 멀리보면 한반도에 세워진 나라들의 행실이 떠오른다. 

견제와 경쟁을 통해 더 나은 국정을 도모해야하지만 최후에 남는 것은 이간질과 사리사욕이다. 

역사를 통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을 터이다.  수능과 취업만 하더라도 한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치만 진심으로 한국사를 공부하고 꺠우치며 고민하는 현상은 아쉽게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점수만을 위한 공부일뿐. 


진정한 역사와 더 나은 국가를 위해서라면 역사를, 하다못해 역사영화에서라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범죄도시

마동석에 의한 마동석 영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동석'을 보기 위해 영화를 봤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ㅋㅋ

간만에 통쾌한 범죄액션이었다. 

사실 내용적으로는 조직폭력배를 마석도 형사가 잡아들이는 것이 전부. 정말이다. 

그 과정에서 자잘한 액션이 아닌 크게 한 방 한 방 터지는 그런 액션이기에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따분란 일상에 큰 힘이 되어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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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싶어

이번에 개봉한 영화이다. 제목부터 파격적인데 나도 처음에는 거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기 끝난 후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원작은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 이다. 소설 원작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제한된 시간에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크레딧이 올라가면 원작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춘 로맨스물에서 '췌장' 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에 사쿠라는 일본의 옛 속설을 들려주는데, 사람이 아픈 부위를 동물에게서 떼다 먹으면 병이 낫는 다는 이야기이다.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사쿠라는 나에게 '공병일기'를 들키고 나와 비밀을 공유한다. 자신의 병을 밝혀도 변화 없는 나를 보고 신기하게 여겨 가까워진다. 사쿠라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행하면서 둘의 사이는 더욱 가까워진다.  영화 종반부에 서로 당신의 췌장을 먹고싶다고 고백한다. 병을 낫게 해주고픈 의미와 네 일부가 되어 살아가고 싶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는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말이다.

개연성은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평론가도 아니고 ㅋㅋ 일개 관객이니까 ㅋㅋㅋ

충분히 영화 전체적으로 연출과 음악, 대사로 메세지를 전달하고 마음을 울렸다. 그것만으로 영화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아무래도 소설 대사를 집어넣다보니 응? 하는 부분이 있지만 흘려넘기자)


참고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9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9830830

원작 소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823575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82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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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나, 너


     

 솔로. 누군가는 솔로인 것을 한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솔로인 것과 아닌 것.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연애를 한다면 전적으로 나의 편이 되어주고 늘 곁에 있는 친구가 생긴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추가하여 남들과는 조금 더 가까운 사이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연애’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평균보다 약간 더 너를 생각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너와의 관계를 남들과 한 단계 위로 놓는다. 나와 네가 처음 만난 날에는 이런 일이 있을지 생각이라도 했을까. 마치 ‘어린 왕자’가 ‘장미’를 만나고 관계를 각별하게 여기는 것처럼 아무런 접점이 없던 너와 나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이것이 솔로에서 약간 벗어난 자들의 삶.


 어린 왕자는 지구에 와서 뱀과 여우와 같은 여러 친구를 만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전혀 상관이 없던 어린 왕자와 동물들 사이에 접점이 생기고 서로를 각별한 존재로 ‘인식’한다. 자신의 세계에서 홀로 살아가던 어린 왕자는 ‘솔로’에서 ‘솔로가 아닌 자’로 탈피했다. 장미와의 관계만큼은 아니지만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홀로 살아가던 자신을 문 밖으로 이끌었다. 이 또한 흔히 여기는 ‘솔로 탈출’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살아가며 너와 내가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흔히들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속담으로만 봐도 알 수 있다. 너와 내가 만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더 나아가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에 따라 스스로를 더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해 준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제시되어있지 않은가. 자칫 편협한 생각으로 ‘솔로’를 단순히 연애 못하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라, 누군가의 관계를 통해 충분히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솔로’라는 단어에 묶여 스스로를 한탄하며 살아가지 말자. 아직 경험하지 못한 관계가 무수히 펼쳐져 있으니.



 4월,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산은 여전히갈색의 앙상한 뼈를 드러내고 있고 나무들도 꽃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추억으로 남겨야 할 지난겨울을 못내 버리기 아쉬운가 보다. 

 그 겨울 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터. 힘들고 고단했던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시작하며 모두가 저마다의 새로운 다짐을 한다. '올 한 해 계획 다 이루어지기를.' 그 다짐, 지금도 변함없을까? 아직까지도 저 나무들처럼 지난 추억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연적지를 걸어간다. 언젠가 이 나무들도, 나도 품속 가득 머금은 무언가를 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비가 온다. 톡, 톡 우산을 때리는 물방울들이 내 마음을 때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가만히 맞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잠깐의 여유,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때를 즐긴다. 밝고 화창한 봄의 활기참도 좋지만 가끔은 잿빛의 풍경 속에서 고독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시간을 이끌어가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 비 오는 날의 특권을 즐기며 동아리방으로 향한다. 회색빛의 고독을 맘껏 즐기면 다가오는 것. 동방 문을 활짝 열면 반갑게 맞아주는 모두. 회색과 노란색의 변화를 느끼며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 학교생활과 함께 마주한 동아리.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지만, 지금은 수업을 마치면 동방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어느새 추억이 가득한 장소가 되어 때로는 위태위태한, 때로는 고양된 나를 받쳐준다. 

 봄, 고독, 그리고 동방.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세 단어지만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이다. 화사한 봄. 가끔은 회색빛의 고독. 이 모두를 느끼고 함께 했던 동방. 모두 현재의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되어 오늘도 함께 살아간다.

2017년 첫 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위치 알파12. 구매했습니다.

잘 쓰던 아이패드2가 슬슬 벅차하길래  태블릿 바꿀 때가 되었구나 생각해 알아보던중, 투인원 기기에 꽂혔습니다!

그래서 서피스 프로4  알아보던 중 우연이 마주친 이 아이. 스위치 알파12입니다. 서피스가 투인원 중에서는 가장 좋다고 하는데 역시 가격이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RAM  4GB/SSD 128GB 가 패키지로 120~130... 한 단계 올리면 무려 160까지 올라가죠. 

한 술 더 떠서.... 위 가격이 패키지로 내놓은 가격입니다. 패키지 이벤트 안 하면 펜, 키보드까지 추가하면 200언저리까지 도달하죠.

오히려 노트북이 훨씬 싼 가격입니다. 


지금 소개할 스위치 알파12는 ACER에서 나온 물건인데 RAM 8GB / SSD 256GB / i5-6200(2.3GHz) 사양으로 100만원 초반입니다.    놀라운 것은 키보드와 전용 펜까지 포함되어있는 가격입니다.

박스 표면입니다.

12인치로 휴대용으로는 적당합니다. 

무게도 1KG 조금 넘을 정도입니다.

▲전용 키보드 커버


▼전용 펜입니다. 건전지를 사용하네요.


커버를 당겨 세워놓을 수 있는 받침대와 불 켜지는 키보드! 막 새로 산 아이라 그런지 보면 볼수록 참 이쁘네요.

이제 사용한지 일주일 되어갑니다. 펜은 서피스프로4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이 있는데, 사실 제가 그림 그릴 용도로 구입한 건 아니기에 크게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정상적으로 필기, 인식 되는 정도로 잘 쓰고 있습니다.


아직 성능에 비해 비싼감이 없잖아 있지만, 투인원에 이정도 성능이면 나름대로 만족합니다. 

3. 1973년의 핀볼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며 '핀볼'이 핵심이다. 당시는 막 핀볼이 흥하던 시기로 사람들은 핀볼에 관심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나 는 핀볼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핀볼과 가상의 대화를 할 정도로 말이다. 집에서는 쌍둥이 자매와 동거하고 있었다. 핀볼과 대화하며 쌍둥이 자매와 동거하는 나의 모습은 제 3 자가 보면 상당히 비정상적이다. 게다가 쌍둥이조차 정상적인 이들이 아닌, 길거리에서 떠돌며 아무 집에 들어가 제 집인 것처럼 생활하는 기이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보니 냉랭함만 남아있던 집에 처음 보는 여자 둘이 있었고 그들은 티셔츠의 숫자가 없다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쌍둥이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거리를 떠도는 이들인 만큼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과거는 상관하지 않고 받아들여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과거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바로 '배전공'의 등장과 함께. 배전공은 배전반을 손보러 왔다가 나와 쌍둥이가 함께 있던 흔적을 발견하며 긴장한다. 쌍둥이가 그에게 배전반을 물었을 때 그의 대답과 뒤에 나올 쌍둥이의 반응은 과거를 짐작하게 한다.

 

전화 회선이 몇 개나 거기에 모여 있어요. , 어미 개 한 마리 있고 그 품에 강아지 몇 마리나 있는 셈이죠. 그래서 어미 개가 강아지를 기르는겁니다. 하지만 어미 개가 죽으면 강아지들도 죽기 때문에 그걸 막기 위해 새 어미로 갈아주려고 하는거죠. ”

 

죽어가고 있어요. 배전반이...”

 

장례식. 배전반의... ”

 

배전반을 어미 개에 비유하고 그에 대한 쌍둥이의 반응은 소름 돋기까지 한다. 그것도 배전반의 의미인 어머니는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전반은 죽어가고 있다고 하며 책의 마지막에는 배전반을 들고 아마 그들의 어머니가 잠들어 있을 저수지로 그것을 던져버린다. 이로 미루어 보아 쌍둥이가 길거리에 떠돌기 시작한 원인은 어머니의 부재, 혹은 마찰일 것이다. 장례식이란 단어를 보고 그들의 어머니가 죽었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 전 죽어가고 있다.’ 라는 말을 한 것을 보아 그 당시에는 죽지 않았을 터인데, 어떤 근거로 쌍둥이가 어머니와 마찰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배전반, 즉 어머니를 마주한다는 각오를 보였다. 이는 어머니와 헤어지기 전에 결코 평탄한 사이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내가 쌍둥이를 아무 이유 없이 받아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각한다. 이전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방황하던 자신과 그들의 모습을 오버랩 해서 생각한 것은 아닐까. 공허로 채워져 있던 자신이 비워지듯 쌍둥이의 공허를 공감하고 케어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에 쌍둥이를 거두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일과를 마친 후 쥐와 제이스 바에 모여 맥주를 마신다. 거기에 핀볼 기계가 있는데 나는 처음에는 그것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난 후 핀볼에 빠져 매일 같이 핀볼 기계에 돈을 밀어 넣는 나를 발견했다. 일과를 마친 후 어두운 게임방에 들어가 기계같이, 의미 없이 고득점을 노리며 핀볼에 빠져 살았다. 오죽하면 핀볼과 대화를 하고 있을 정도일까. 핀볼의 칭호는 원래 모델명인 쓰리 플리퍼 스페이스쉽은 집어치우고 그녀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게임기를 사람과 동일시 할까. 그만큼 핀볼에 빠져있다는, 아니 홀려 있다는 말이다. 시간이 흘러 핀볼 기계가 사라지자 나는 핀볼에 일조가 있는 자칭 스페인 강사를 만나 핀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핀볼. 도대체 그 기계가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나 미치게 하는걸까. 작품 마지막에 핀볼 수집가에게 안내 받은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수많은 핀볼을 맞이한다. 하지만 연식 있는 기계들은 바로 지나쳐버리고 오로지 쓰리 플리퍼 스페이스쉽’, ‘그녀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 그녀와 만나고 그간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헤어진다. 짧은 만남이었고, 나는 그녀와의 마지막 인사를 하고 기억 속에 묻는다. 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 스페인어 강사와 한 대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어요” 

잃을 게 없잖아. ”

언젠가 잃을 것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 잃어야만 할 것의 영광은 진정한 영광이 아니야”,

이 세상에 잃어지지 않는 게 있나요?”

있다고 믿어. 너도 믿는 편이 좋을 거야” 

어쩌면 너무 낙관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야”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반대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 잃을 게 없다는 대답. 그에 따라오는 언젠가 잃을 것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 잃어야만 할 것의 영광은 진정한 영광이 아니야.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행동한다. 그 목표에 의미를 가지고 그에 따르는 영광을 좆는다. 하지만 위에서 스페인어 강사는 말한다. 언젠가 잃을 것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극단적인 의견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매사에 이익을 바라고 행동을 취한다면 사람은 확실하게 이익이 보장된 행동만 취해야 한다. 하지만 보장된 성공은 신 외에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인간은 아무런 발전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꾸준히 발전해왔다. 이는 위의 대사를 반증해준다. 물론 지금의 해석이 오히려 극단적인 해석일 수 있다. 평범하게 보자면 잃어버리지 않게 노력하며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언가에 홀려 핀볼을 찾아다니고 그를 본 스페인어 강사는 나에게 조언을 해주며 그와의 만남을 마친다. 나는 당시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인지한 상태이고 강사는 잃을 것이 없는 그에게 희망의 말을 전하는 것이리라. 아무것도 없는 그는 앞으로의 행동에 희망을 남겨준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기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라는 의미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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