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미국은 흑인이 차별받는 시대였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에는 흑인은 백인과 전혀 다른 인격이었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로 쓰는 풍경까지 보였다. 영화의 배경 역시 1960년대이다. 흑인차별이 한창일 때의 시기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스키터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넓은 세상으로 나가 글을 쓰고 싶어한다. 결국 지역신문사에 취직하게 되고 칼럼의 대필을 맡게된다. 이런 일을 하고있는 스키터이지만 어릴 적 친구들은 모두 부잣집에 시집을 갔고 가정부까지도 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키터는 친구들의 가정부가 차별받는 모습을 목격하고 이들을 모아 폭로하는 책을 만들고 흑인인권개선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지구에는 크게 흑인,백인,황인으로 나뉘어지는 세 가지 피부색이 있다. 하지만 세 인종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생겨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문명이 세계를 개척하며 식민지를 만들 때 피식민지의 주요 인종인 흑인들은 영문도 모른 체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땅에 처음 보는 백인들이 들이닥쳐 빼앗고 침략하는 행위를 흑인들은 뾰족한 저항도 없이 서양으로 끌려가게된다. 그 안에서 노예와 가정부계층이 생기고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백인들은 흑인을 짐승 이하로 취급하며 차별을 일삼는다.

이러한 차별이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차별이 남아있는 지역이 있다. 실제로 아직 영국에서는 흑인과 물을 같이 쓰면 더럽다는 인식이 남아있다. 단지 피부색이 검을 뿐인데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 근대의 주도권이 백인이 아닌 흑인에게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흑인의 피부색이 기준이 되며 오히려 하얀색을 가진 백인이 부당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위 경우를 보면 차별은 개개인의 인식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개미들의 사회에서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종의 생물이 나타났다. 이 생물은 개미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개미들은 자신과 다른 모습의 그를 따돌릴 것이다. 인간에게도 같은 상황이 적용된다. 백인들의 서구사회에서 흑인을 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새로운 땅을 개척했을 때 나타난 검은 피부의 그들은 백인들에게 익숙치않았음이 분명하다. 흑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상황에 서로는 폭력으로 대응했고 압도적인 무기성능의 차로 백인이 흑인을 압승하는 결과가 나왔으며 고스란히 신분의 밑바닥에 끼워 넣어 짐승처럼 부린 것이다. 만약 백인과 흑인이 호기심을 가지되, 적개심을 풀고 대화해보려는 태도와 인식을 가졌으면 현재의 차별도 과거의 차별도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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