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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야희우 호우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내리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는 불빛만 비치네.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두보의 춘야희우이다. 이 시의 첫 부분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 8월의 크리스마스를 제작한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이다.

먼저 춘야희우를 알아보자. 제목은 '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 라는 뜻이다. 두보가 50세 무렵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에 완화초당(浣花草堂), 두보초당(杜甫草堂)이라고도 부르는 장소를 만들고 머물 때 지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금관성(錦官城)은 청두의 옛 이름이다. 당시 두보는 몸소 농사를 지으면서 그의 생애에서 가장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봄비에 대한 반가운 느낌이 더욱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봄의 희망을 생동하는 시어에 담아 비 내리는 봄날 밤의 정경을 섬세하게 묘사한 명시로 꼽힌다.

호우시절은 쓰촨성 지진 복구 담당으로 두산에서 나온 책임자 동하와 과거 동하와 함께 공부했던 메이가 다시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간략하게 말하자면 오랜만에 만나 다시 사랑의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는 둘 사이에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감독은 춘야희우에서 어떻게 호우시절이라는 영화를 구상했을까. 영화의 시작은 업무 목적으로 쓰촨성에 온 동하가 시간이 남아 우연히 들른 두보초당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는 메이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러면서 동하는 메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과거 자신이 메이와 긴밀했던 사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메이는 기억이 안 난다며 증명해보라 한다. 그렇게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헤어지고, 동하는 친구에게서 증거를 찾고자 노력한다.


 이 장면은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춘야희우에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내리네

 

구절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둘이 만난 시간대는 봄이었으며 갑자기 내리는 비로 둘의 사이는 더욱 고조된다. 밤 중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동하가 메이에게 선물로 준 자전거의 존재가 언급된다. 메이는 그 자전거를 팔아버렸다고 대답했고, 동하는 실망을 느낀다. 그러는 메이의 대답 내가 자전거를 못탈 수도 있는데 자전거를 선물했잖아?’ 동하는 탈 수 있지 않았냐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못타게 되었다는 말뿐이었다. 이 부분에서 과거에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를 언급하며 현재 메이와의 관계를 진전시키려는 동하와 과거를 잊고, 혹은 고의로 숨기며 회피하는 메이이 모습. 이를 봐서 둘이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순간 분위기가 서먹해지지만 금새 자리를 옮겨 분위기는 살아난다. 바에서 한잔 들면서 메이가 하는 말이

봄이 되어 꽃이 피는 걸까, 꽃이 피어 봄이 오는 걸까 ' 꽃이 봄을 인식함으로 봄을 따라 피는 것인지 꽃이 먼저 피어 봄이 뒤따라오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한 마디. 아마 동하를 향해 건넨 말이 아닐까. ’은 사랑을 하는 시기이고 은 사람과의 관계 혹은 사랑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보면 사랑할 시기가 되어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인지 먼저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 사랑할 시기가 찾아오는지.. 라고 해석할 수 있다. 동하에 대한 약간의 질책과 기대가 섞여있는 발언이 아닐까 싶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위 구절이 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둘 사이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 반가움에서 비롯된 감정이 서서히 그들에게 스며들어 감정을 고조시키고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좋은 분위기 속에 동하가 출국할 때가 다가왔다. 공항에서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놓지 못하고 동하는 출국을 포기하고 메이와의 만남을 우선한다. 격렬한 감정에서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중 현장 담당 남사장님까지 합류한다. 남사장님 눈을 피해 동하는 메이에게 스킨쉽을 시도하다 거절하는 메이에게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메이를 보내고 남사장님과 둘이 남았을 때 사랑에는 국경이 있다. ’ 라는 말을 남사장님은 조언으로 해준다.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는 불빛만 비치네

 

이 구절이 호우시절을 접하기 전에는 단순히 분위기를 즐기며 운치 있는 들길과 배의 조명을 묘사하는 것으로 느껴졌지 위 장면을 보고 나서 메이와의 즐거웠던 분위기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어딘가 쓸쓸하게 남아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랑을 하려 했지만 이미 결혼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과거의 즐거운 때는 이미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이에 더하여 동하가 메이를 포기하면서 또 한번 타격을 입게 되는 부분은 메이의 남편이 이제는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1년 전 쓰촨성 지진 당시 남편이 사망했던 것이다. 메이는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었고 동하는 그런 메이를 놓아주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시 구절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장면은 동하가 메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녀에게 자전거를 선물하고, 메이는 그 자전거를 연습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메이에게 자전거를 다시 한 번 선물로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극복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선물한 것이 아닐까. 과거에는 자신으로 인해 충격을 받고 지금은 남편을 잊지 못하는 메이를 위로하고자 하는 의도와 그렇게 함으로써 활기찬 메이의 모습을 기대하고 자신은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란걸 알려주고 있는게 아닐까. 시 구절처럼 거리감과 암울함, 그리고 쓸쓸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동하의 감정에서 화려한 금관성, 그 안에 꽃들을 바라본다는건 과거의 금관성, 지금은 청두로 불리는 곳에서 메이라는 꽃이 활짝 피기를 바라는 동하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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