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나, 너


     

 솔로. 누군가는 솔로인 것을 한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솔로인 것과 아닌 것.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연애를 한다면 전적으로 나의 편이 되어주고 늘 곁에 있는 친구가 생긴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추가하여 남들과는 조금 더 가까운 사이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연애’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평균보다 약간 더 너를 생각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너와의 관계를 남들과 한 단계 위로 놓는다. 나와 네가 처음 만난 날에는 이런 일이 있을지 생각이라도 했을까. 마치 ‘어린 왕자’가 ‘장미’를 만나고 관계를 각별하게 여기는 것처럼 아무런 접점이 없던 너와 나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이것이 솔로에서 약간 벗어난 자들의 삶.


 어린 왕자는 지구에 와서 뱀과 여우와 같은 여러 친구를 만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전혀 상관이 없던 어린 왕자와 동물들 사이에 접점이 생기고 서로를 각별한 존재로 ‘인식’한다. 자신의 세계에서 홀로 살아가던 어린 왕자는 ‘솔로’에서 ‘솔로가 아닌 자’로 탈피했다. 장미와의 관계만큼은 아니지만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홀로 살아가던 자신을 문 밖으로 이끌었다. 이 또한 흔히 여기는 ‘솔로 탈출’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살아가며 너와 내가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흔히들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속담으로만 봐도 알 수 있다. 너와 내가 만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더 나아가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에 따라 스스로를 더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해 준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제시되어있지 않은가. 자칫 편협한 생각으로 ‘솔로’를 단순히 연애 못하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라, 누군가의 관계를 통해 충분히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솔로’라는 단어에 묶여 스스로를 한탄하며 살아가지 말자. 아직 경험하지 못한 관계가 무수히 펼쳐져 있으니.



 4월,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산은 여전히갈색의 앙상한 뼈를 드러내고 있고 나무들도 꽃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추억으로 남겨야 할 지난겨울을 못내 버리기 아쉬운가 보다. 

 그 겨울 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터. 힘들고 고단했던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시작하며 모두가 저마다의 새로운 다짐을 한다. '올 한 해 계획 다 이루어지기를.' 그 다짐, 지금도 변함없을까? 아직까지도 저 나무들처럼 지난 추억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연적지를 걸어간다. 언젠가 이 나무들도, 나도 품속 가득 머금은 무언가를 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비가 온다. 톡, 톡 우산을 때리는 물방울들이 내 마음을 때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가만히 맞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잠깐의 여유,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때를 즐긴다. 밝고 화창한 봄의 활기참도 좋지만 가끔은 잿빛의 풍경 속에서 고독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시간을 이끌어가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 비 오는 날의 특권을 즐기며 동아리방으로 향한다. 회색빛의 고독을 맘껏 즐기면 다가오는 것. 동방 문을 활짝 열면 반갑게 맞아주는 모두. 회색과 노란색의 변화를 느끼며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 학교생활과 함께 마주한 동아리.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지만, 지금은 수업을 마치면 동방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어느새 추억이 가득한 장소가 되어 때로는 위태위태한, 때로는 고양된 나를 받쳐준다. 

 봄, 고독, 그리고 동방.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세 단어지만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이다. 화사한 봄. 가끔은 회색빛의 고독. 이 모두를 느끼고 함께 했던 동방. 모두 현재의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되어 오늘도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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