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산은 여전히갈색의 앙상한 뼈를 드러내고 있고 나무들도 꽃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추억으로 남겨야 할 지난겨울을 못내 버리기 아쉬운가 보다. 

 그 겨울 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터. 힘들고 고단했던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시작하며 모두가 저마다의 새로운 다짐을 한다. '올 한 해 계획 다 이루어지기를.' 그 다짐, 지금도 변함없을까? 아직까지도 저 나무들처럼 지난 추억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연적지를 걸어간다. 언젠가 이 나무들도, 나도 품속 가득 머금은 무언가를 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비가 온다. 톡, 톡 우산을 때리는 물방울들이 내 마음을 때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가만히 맞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잠깐의 여유,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때를 즐긴다. 밝고 화창한 봄의 활기참도 좋지만 가끔은 잿빛의 풍경 속에서 고독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시간을 이끌어가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 비 오는 날의 특권을 즐기며 동아리방으로 향한다. 회색빛의 고독을 맘껏 즐기면 다가오는 것. 동방 문을 활짝 열면 반갑게 맞아주는 모두. 회색과 노란색의 변화를 느끼며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 학교생활과 함께 마주한 동아리.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지만, 지금은 수업을 마치면 동방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어느새 추억이 가득한 장소가 되어 때로는 위태위태한, 때로는 고양된 나를 받쳐준다. 

 봄, 고독, 그리고 동방.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세 단어지만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이다. 화사한 봄. 가끔은 회색빛의 고독. 이 모두를 느끼고 함께 했던 동방. 모두 현재의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되어 오늘도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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