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족이란 항상 함께하며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언제나 가족은 함께'라는 말을 듣고 자랐으며 정말로 크고 작은 행사에 항상 가족과 함께했다. 입학식, 졸업식은 물론이요. 방학 중 가족여행 한 번은 꼭 갔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멘토처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이며 진지하게 상담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었다. 세상에 의지할 건 가족밖에 없다는 말을 들으며 화목하다 자부할 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이번 연극 '듀랑고'는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들들에게는 비밀이 있었고, 가족 관계를 지탱해 줬던 아내는 이제 없다. 부승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지 모른다. 집에 돌아온 부승 가족은 말없이 앉아 있다. 하지만 곧 아이삭과 지미는 부승을 위로하며 다시 가족의 일상을 회복하려 한다. 방황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끝내 흩어지지 않는 가족의 사랑이 드러난다.'

 

 극에 나오는 가족은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먼저 부승은 평생을 몸담아 온 회사에서 잘리게 되었다. 나름 일 잘하고 문제 일으키지 않는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성실한 직원이었지만 회사로서는 정리하기 쉬운 직원 중 하나였을 뿐이다.  첫째 아이삭은 의대를 목표하는 학생이다. 인터뷰 일정이 잡혀 하와이로 갔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인터뷰를 보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 둘째 지미는 수영에 재능이 있는 친구였지만, 사실 그다지 수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재능이 있지만 흥미는 그다지 없는 케이스.

 

 가족들은 서로에 대해 꼭꼭 숨기고 가족이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의 평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서로의 계획에는 가족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생각했고,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준다 생각했다. 아이작은 어머니와의 추억을 가진 채로 아버지를 대한다. 하지만 그다지 좋은 추억이 아니었기에 아버지와 마찰이 잦았고, 그저 마찰을 피해 살아왔다. 그게 아버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기타연주를 좋아하며 밴드도 하고 있지만,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한다. 둘째 지미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자신을 숨기며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형과 아버지 사이를 조율하며, 아버지에게는 좋은 아들이 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지미는 갑자기 성 정체성에 혼란을 마주하게 된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극 내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집에서 모텔로, 모텔에서 듀랑고까지 계속해서 차로 이동한다. 차에 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들은 서로에 대한 갈등을 심화시킨다. 처음 집에서 출발할 때는 여행에 대해 부정적인 아이삭과 아버지의 갈등이 심화하고, 아버지는 내면에서 자책을 계속한다. 평생을 몸담아 온 회사에 소속감을 느꼈지만, 회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자꾸만 상태는 좋지 않아졌고, 아들들에게 말하지도 못한 채 곪아간다

 모텔에 도착하고 나서 가족의 균열은 시작된다. 아버지 부승은 모텔 연못 앞에서 사색하며 어느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를 한다. 하지만 그 노인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정년퇴직. 그 노인은 전직 교사로서 정년퇴직하고 느긋하게 노후를 즐기고 있다. 반면 부승은 2년밖에 남지 않은 정년퇴직을 눈앞에서 놓쳐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숙소에서는 아이삭과 지미의 갈등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미가 잠시 나간 사이에 아이삭은 지미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스케치북을 펼쳐보았고, 지미가 숨기고 있던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 장면을 지미가 발견하고 나서 애써 부인하지만 바로 태도를 바꿔 지미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그리고 아이삭은 본인 이야기를 한다. 의대 인터뷰를 하러 갔지만, 사실은 가서 놀고 왔다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지만 잘 모르겠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며 형제 사이는 조금 더 가까워진다. 

묘한 견제와 함께

모텔을 나 듀랑고로 가는 길. 지미는 뒤에서 자고 있고 아이삭은 부승에게 조용히 말한다. 지미 수영하는 거 조금 쉬게 할 수 있냐고. 하지만 부승은 절대로 안 된다며, 지미는 수영을 좋아한다고 단정 짓는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일단 운만 띄워두고 듀랑고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상상 속의 낙원이 아닌 이미 떠나버려 잡을 수 없는 기차뿐이었다.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하는 기차. 거기서 아이삭의 분노는 터져버린다. 지금 이 여행의 의미가 있냐고 부승을 몰아붙인다. 그렇게 가족은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불편한 결말

 

 

 항상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가족의 갈등이 소재로 나오면 이런 상황으로 흘러간다. 서로 꽁꽁 싸매고 있다. 극한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상황. 한시가 급한 때 서로에 대한 결점을 알아버리니 신뢰가 무너지고 갈등이 심화한다. 그럴수록 더욱더 깊은 속내를 꺼내고는 한다. 하지만 '듀랑고'는 극한의 상황까지 가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오히려 꺼내고 애매하게 끝이 나버린다. 통쾌하게 서로 울면서 끌어안고 화해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서로의 속내를 쏟아내고 거기서 끝이었다. 어떻게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는지, 뒤에 어떻게 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한 연극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연극을 보고 나왔을 때는 상당히 불편했다. 마치 화장실 갔다 휴지를 안 들고 간 느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애매하게 끝나버린 그들의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과연 어떻게 하면 되었을까. 그리고 다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하나 있었다.

이게 가족의 모습이구나.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받으며 가족은 함께 간다. 정말 연을 끊고 산다면 모르겠지만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가족 특성상 그들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려 할 것이고, 선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둥글게 서로 보듬고 품어가는 게 바로 가족이니까 말이다.

 

 

원문링크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5806

안녕하십니까. 공대생 에디터 김상현입니다.

드디어 가장 친숙한 분야가 문화리뷰로 나타나 매우 들뜬 상태입니다. sf라니, 과학 분야라니!

여태 문화 초대는 예술과 인문학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기에 인문학적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저에게는 관련 글을 쓴다는 것이 나름으로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즐겁게 손 가는 대로 작성할 수 있는 기분이 듭니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는 원종우 작가의 소설로 단편집이다. 각 소설은 '앞설'과 본문, 그리고 '뒷설'로 이루어져 있다. 앞설에서는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과학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뒷설에는 본문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토록 친절한 책이 어디 있을까. 작가는 절대 독자를 가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과학을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지, 거부감은 느끼지 않을지 깊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챕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챕터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다리다.'이다.

 

 

1.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다리다.'

 

 먼저 앞설,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며 죽음을 엔트로피로 묘사한다. 엔트로피는 열역학적 상태함수(state function)의 하나로서, 열역학적 계에서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즉 유용하지 않은 에너지를 기술할 때 이용된다. 무질서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현대 우주론에서조차 우주는 영원하지 않다고 한다.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다 어느 시점에서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열평형 상태가 된다. 이는 원자를 포함에 모든 우주의 물질들이 얼어붙어 정지하게 되고 에너지 흐름도 모두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작가는 죽음을 이와 같다고 하였다.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관절이, 근육이 퇴화하면서 생명 활동이 서서히 정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다. 작품의 배경은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래. 우연히 불로불사의 약을 개발하게 되고 온 인류가 영생을 얻게 되는 시대이다. 투약하는 순간 몸의 노화가 멈추고 그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결벽증과 대인기피증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인류는 그렇게 서로를 잃고 자기만 생각하는 바보가 되었다. 주인공만이 그저 하루하루 늙어가며 자연을 즐기고 인생을 즐긴다.

 

 인간은 유한한 생명을 지녔기에 늘 도전했고, 그렇게 인류는 발전해왔다.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며 더욱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형태로든 유한한 생명 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였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듯이 말이다. 지나가는 꼬마에게 유한한 삶에 관해 설명하면서도 이미 늦어버린 현실은 그를 너무나도 늙게 했다.

 

2. 과학, 친해지길 바라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는 이처럼 sf 소설임을 명시하면서도 과학적 지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앞설에 나온 간단한 정보를 잘 이해하고 본문을 읽으면 앞설에서 얻은 지식을 자연스레 본문에 투영시킬 수 있다. 그리고 뒷설까지 읽으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과학과 문학, 그리고 철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단편소설로 승화시켜 보다 더 다양한 관점으로 주제를 고찰하고 의견을 도출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흔히 우리가 sf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설마 저런 일이 일어나겠어.', '미래에는 정말 저러고 살까?' 하는 생각들은 충분히 실현 가능성 있는 요소들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생각이나 했을까. 이렇게 과학은 항상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다. 과학을 통해 과거를 보고 현재를 개발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컴퓨터가 발전하고 AI가 발전하고, 이제는 누구나 4차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를 들어봤을 정도로 다음 세대의 형식적인 변화는 과학으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 특성상 수학·과학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과학적 지식도 쌓아보는 것이 어떨까. 그것도 아주 쉽고 재미있게.

 

 

원문링크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5569

 

처음 듀랑고를 보고 게임이 생각났다. 내가 알고 있는 듀랑고는 모바일게임 이름이 유일했으니까. 야생에서 생존하는 게임이었는데 넓은 대지와 절벽들로 둘러싸인 이미지였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니 미국 콜로라도 남쪽에 있는 도시란다. 미국을 가본 적이 없기에 미국의 듀랑고는 연상이 되지 않았다.

 

이번에 향유하게 될 연극은 재미교포 2세대 작가 <줄리아 조>의 작품이다. 작가는 한인 이민 가정의 방황과 결합을 보여주는 작가로서 2017년 한국에서는 '가지'로 처음 소개되었다. 재 공연까지 올리며 약 2,000명의 관객이 다녀갔고, 제54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들은 "음식을 소재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한민족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의미를 지닌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다음 작품인 듀랑고는 한국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공연이라 의미가 더 크다.

 

<상실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Loss, 2004)>, [BFE(2005)], 그리고 마지막 <듀랑고(Durango, 2006)>로 사막 3부작을 이룬다. 

 

“나는 항상 사막이 위험하면서도 아름답고 또한 매우 고립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 내 연극에는 메시지가 있다기보다 일종의 탐험이다. 하지만 확실히 고독이라는 주제가 있다. 사막은 그 고독을 반영한다. 애리조나에서 자란 것이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뉴욕 중앙일보, 2005.06.03.)

 

사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서부영화에 나온 것처럼 먼지 뭉치가 돌아다니고 사방에 모래로 둘러싸여 있으며 낙타가 오아시스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이 보편적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막의 이미지는 낮엔 뜨겁고 건조하고 밤엔 춥고 위험한 곳이다. 그럼에도 고요함 속의 낭만이 있는 곳이다. 물론 아직 사막은 가본 적이 없으나 밤에 청량한 하늘에 수놓은 별을 보는 게 로망이다.

 

 

작가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이민자 2세대의 시선으로 다룬다. 특이한 점은 사회적 메세지, 사회적 이슈를 이야기하는 작품과 달리 정말 가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보니 가족이 있는 것이다. 가족에는 여러 모습이 있다. 구성원이 어떻게 되느냐와 같은 형태의 개념이 아니다. 정말 친구처럼 함께 지내는 모습도 있고, 부모님의 사업이나 일 때문에 자주 보지 못해 관계가 그리 친밀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족은 항상 함께하며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그렇게 교과서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극에 나오는 가족은 아내, 어머니를 잃고 상처 속에 살아간다. 아버지 부승은 아들들에게 여행을 가자 제안했고 그들은 듀랑고로 향한다. 그들이 상상했던 것처럼 여행으로 부자 사이가 돈독해지는 건 아니었다. 점점 지쳐가며 멀어지고 아들들은 그동안 간직했던 비밀을 아버지에게 폭로하고 만다. 신뢰로 가득했던 가족이라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었고 아내는 이런 생황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아버지로서 어떤 행동을 해야 했을까.

 

 

그 뒤로 그들은 끈끈한 사랑을 느끼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렇게 일상을 회복한다.

 

어떻게 회복할지는 모르겠다. 대체 어떤 비밀이길래 아버지의 멘탈을 무너뜨렸으며, 그 큰 사건을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했을지가 기대된다.

 

 

"이 작품을 통해 사회에 지쳐있는 많은 관객들에게 소소한 재미와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원문 링크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537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