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너울 작가는 《대멸종》 앤솔로지 수록작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로 SF어워드 2019 중·단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동시대 청년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냄과 동시에 SF적 상상력을 폭넓게 펼쳤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일상의 재현으로 공감을 자아내고 상상의 구현으로 쾌감을 선사하는 작가 특유의 미덕이 본 작품집 전반에 구현되어 있다.

 

 

라는 평을 받는 심너울 작가의 신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은 5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 SF 소설집이다. 단편과 SF의 조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상의 조합이다. 

 

 

1. 장르

 

나는 단편집을 굉장히 좋아한다. 기다리는 성격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연재물의 기다림은 고통과도 같다. 드라마는 일주일 뒤에, 영화는 1~2년 뒤에 다음 편이 나오는데 반해 책은 순전히 작가 역량에 달렸기 때문에 언제인지 모르는 다음을 기다리기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단편을 접했는데, 하루에 가볍게 한 작품 두 작품 내가 원하는 대로 나눠 읽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길지 않아서 중간에 흐름을 억지로 끊을 필요도 없었고 그 당시 오랜 시간 책을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는 나에게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렇게 단편집의 매력에 빠졌다.

 

이전에 한창 '룬의 아이들' 시리즈에 빠진 적이 있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매혹적인 세계관과 그곳을 모험하는 인물들의 성장스토리는 10대 청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다. 주인공들이 용과 요정이 사는 세계를 모험하며 마법과 검술을 사용해 고난을 해쳐나간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판타지에 대한 동경이 생기는 것이다.

 

                                            △전민희 작가의 장편 판타지, 룬의 아이들

 

이번 작품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단순히 용과 요정이 사는 판타지 세계를 그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대한민국에서 2020년 지금의 일상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서술했다.

<정적>에서는 일정 구간에서만 소리가 차단되는 설정이, 두 번째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에서는 하도 연착되고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망령이 되어 떠돈다는 설정을,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에서는 평일을 무료하게 살아가다 금요일만을 기억하게 되는 설정을,  마지막 두 작품 <신화의 해방자>와  <최고의 가축>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용'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렇게 각 작품은 21세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독특한 설정을 추가하여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하나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2. <최고의 가축>

 

한반도를 수호하는 용 이스켄데룬은 북미 대륙을 수호하는 용 아이발리크와 싸움을 벌인 끝에 왼쪽 날개에 큰 부상을 입는다. 이스켄데룬이 치유를 위해 관악산 깊은 곳에 숨어 산 지 430년이 지난 어느 날, 한국의 생명공학 기업 셀트린에서 파견된 직원 한 명이 용의 둥지에 방문한다. 그로부터 인간의 급격한 발전상을 전해 들은 용은 인간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의문을 품는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을 가축으로 삼아 식량과 보물을 얻고 인간을 보호해 왔기에, 이스켄데룬은 이전에 비해 큰 능력을 갖게 된 인간과 새로운 거래를 맺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우선 용의 존재를 인정한다. 무릇 판타지라 함은 중세시대 배경을 가지며 용과 싸우는 인간이란 게 교과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의 존재는 현대에 판타지를 대입하여 지금 세상에 용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두 용이 싸우면서 인간은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하고 용이 잠들어 있는 긴 세월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430년이 지난 현대의 모습은 용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인간의 요구에 적당히 맞춰주며 지식을 쌓았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용이 지식을 받아들이는 속도보다는 새로운 무언가가 창출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렇게 용은 인간이 주는 혜택을 받으며 편안하게 현대의 정보를 받아들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용은 인간에게 경각심을 주기로 결심했다. 이전부터 인간은 용의 가축이었기 때문에 다시금 그 점을 깨닫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용이 거주하던 동굴을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세상에 용을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과거에도 자신을 두려워하고 신적인 존재로 모셨기 때문에 반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두려움과 경외심이 아닌, 경계의 대상이며 제압하려는 존재로 대하고 있었다. 용은 포효했지만, 용의 일부로 발전을 이루어낸 인간은 이미 용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버렸다. 그렇게 용은 제압당하고, 다시 동굴로 돌아갔다.

 

 

2. 이제는 우리가 

 

 용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지금 우리 세대는 기술의 발전이 엄청나게 빠른 시대이다. 대한민국만 봐도 IT 강국으로 발전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어릴 적 그리던 순간이동, 우주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용적인 파트에서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 예시로 최근에 나온 '갤럭시 플립z'는 액정을 접을 수 있다는 혁신적인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LG에서는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연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멀리 바라보면 인간의 기술이 이미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고 있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SF 영화의 대부분은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된다는 특이한 점이 있다. 그렇기에 이를 시사하는 장면은 일종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기계가 제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인공지능의 발달로 대부분의 영역에서 자동화가 완성된다. 그리고 인간은 편리함에 기대어 놀고먹고 자는 원초적인 생활을 지속한다. 그렇게 지성도 이성도 퇴화하고 인간은 인공지능의 노예가 된다.

 

이런 스토리가 정말 영화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일까? 

최고의 가축을 읽으며 용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언제까지 인간이 지구의 정점에 서 있을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이 발견한 개념들은 지구의 몇 %를 차지할까. 그렇다면 우주는?

 

인간은 너무나도 하찮은 존재라는 것이 와닿는 순간이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6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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